[코리아드림티비] 하늘에서 바라 본 은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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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한해를 시작하면서
김대건신부의 첫 사제생활이 시작 된 은이성지를찾았다.
하늘에서바라 본 천주교성지 시리즈를 시작하면서작은봉헌을시작 했다.
은이성지 용인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

김대건의 본관은 김해이고, 증조부는 김진후金震厚, 비오, 1738~1814이며, 조부는 김택현金澤鉉이다. 부친은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1796~1839년) 성인이며 모친은 고 우르술라로 선대때부터 여러대에 걸처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충청도 솔뫼에서 살아왔다.

김대건은 1821년에 탄생하였고 아명(兒名)은 재복(再福)이며, 보명(譜名은 지식(芝植)으로 관명(冠名)은 대건大建이다.
김대건의 가문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증조부 김진후였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에 체포되어 1801년(신유박해) 때에 유배되었다가 1805년 다시 잡혀 충청도 해미에서 10년 간의 옥중 생활을 하던 중 1814년에 순교하였다.
조선 땅에 발을 디딘 프랑스 선교사는 모방Maubant, 1836년) 나 신부였다. 바로 이 모방 신부에 의해서 한국의 첫 성소자 세 소년이 발탁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다.

<김대건 신부>
1821년 8월 21일 : 출생.
1836년 4월 : 골배마실 이웃의 ‘은이 공소’에서 모방Maubant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뒤 신학생으로 발탁.
1836년 12월 2일 : 동료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순명과 복종 서약 후 다음날 마카오로 출발.
1837년 6월 7일 : 중국 대륙을 남하하여 마카오에 도착.
1841년 11월 : 철학과정 이수, 신학과정 입문.
1844년 12월 : 최양업과 함께 삭발례부터 부제 서품까지 받음.
1845년 1월 1일 : 조선교회 밀사와 상봉하여 조선에 귀국.
1845년 3월 : 서울에서 신학생 2명을 지도함.
1845년 4월 30일: 선교사 영입 위해 제물포 출발.
1845년 8월 17일 : 상해 연안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
1845년 11월~1846년 4월 :은이 공소를 중심으로 사목 활동.
1846년 4월 13일 : 은이 공소에서 미사 후 입국로 개척을 위해 서울로 출발.
1846년 6월5일 : 인천 앞바다 순위도에서 체포됨.
1846년 9월16일: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
1857년 9월 23일 : 가경자로 선포됨.
1925년 7월 5일 : 시복됨.
1949년 11월 15일 : 모든 한국 성직자들의 대주보로 결정됨.
1984년 5월 6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에서 102위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됨.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중국 상해의 김가항 성당은 명말明末 숭정 년간(628~1644에 김씨 성을 가진 교우들에 의해 황포강 건너 김가항에 처음 세워졌다. ‘
김가항金家巷’은 ‘김씨 성을 지닌 사람들의 골목’이란 뜻이다.
 
1841년에는 남경교구 주교좌 성당 으로 되었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1845년 8월 17일 부터 1847년까지는 주교좌성당으로 남아 있었다. 1872년에는 700~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을 별도로 짓고 김가항 성당은 학교로 사용하였다. 1849년 그 자리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딕양식의 대성당을 건축 하였다.
김가항 성당은 1990년에 그곳을 방문한 오기선 신부에 의 해 국내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2000년 7월에 상해 정 부의 도시 개발 정책에 따라 성당 철거계획을 통보 받았다. 2001년 3월 30일 김가항 성당이 철거되자, 수원교구는 주 교회의 승인을 거쳐 은이성지에 김가항 성당 복원계획을 수립하였고 2013년 7월 5일 옛 공소터 매입 후 2016년 9월 에 김가항 성당을 복원 건립하였다.

현재 성당은상해에서 복원당시 가져온 4개의 기둥,2개이 대들보 한개의 봉주를 사용했다.
Date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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